여행 2일째 아침을 순천에서 맞았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순천 상사호와 낙안읍 민속 마을을 돌아보고 순천 시내로 향해서 결정한 곳이 이곳 모텔이다. 모텔의 장비가 누추해서 실내 온도가 적절하게 유지되지 못한 관계로 찌뿌둥한 아침을 맞았다.
순천시 중심에 형성된 모텔가에 위치한 숙소다. 어찌되었던 하루를 잘 보내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필자 혼자라면 게스트하우스에 묵겠지만 어제 긴급하게 라이딩 크루 한 분이 더 추가되어서 모텔에서 하루를 보냈다. 두 명이라면 모텔이나 게하나 별반 차이가 없다. 게스트하우스 가격도 매년 조금씩 인상되어서 필자의 인상을 구겨지게 한다.
"아름다운 여자만을 보면서 여수 해안도로를 달려 보자."
우리는 그렇게 해안도로만 찾아서 달렸다.
일단 순천시에서 네비는 최종 목적인 화양조발대교로 찍고 경유지는 사전에 지도에서 검색한 이름 모를 곳으로 설정하면 이렇게 달릴 수 있다. 지도와 도로 표지판에 적혀 있는 "해안도로"만 미친 듯이 검색해서 세팅한 결과다. 순천에서 여수는 그리 멀지 않아서 4차로 좋은 길로 달리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은 새로운 이미지를 뇌 속으로 밀어넣어서 자극을 받기 위해서 하는 불가피한 행위다. 따라서 최대한 멋진 길을 강박적으로 달린다.
레블500과 스티드600을 타고 순천에서 여수 방면으로 달리면 율촌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이곳부터는 여수시 행정구역으로 포함된다. 한가로우며 아무도 찾지 않는 허름한 도로가 펼쳐져 있지만, 풍경은 많은 사람이 와야 될 것 같은 분위기다. 필자는 2018년도에 막삼250을 타고 전라도 투어를 진행한 경험이 있지만, 역시나 구석구석 다 돌아보는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주 와서 여러 번 방문을 통해 다양한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바이크 여행의 정석이라고 필자만 생각해 본다.
바이크 여행은 정처없이 떠돌듯이 다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투어는 시간을 많이 소모하여 현타가 온다. 따라서 특정 목적지로 가는 과정을 좀 느슨하게 잡고 달리면 좋다. 이름 없는 곳이라고 해서 아름답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율촌면에서 만난 두언길이라는 도로가 그러했다. 낡은 지방도였고, 다니는 이도 없이 한가롭고 조용하며 심지어는 바닷물도 더문더문 빠져있는 상태였다.
두언길 끝 지점에서 잠시 멈추었다. 이곳에서 정서적 배설과 물리적 배설을 동시에 시전하고, 함께 온 라이딩 크루와 한국 이륜차 시장의 방향과 전망을 토론해 보았다. 혹은 레블500의 단점과 스티드600의 장점을 교차시키면서 대화를 시전했다. 이런 짓을 전문용어로 '입도바이'라고 한다.
필자의 유년 시절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다에 배설을 많이 했다. 들어가서 한 적도 있고 바다를 보면서 한 적도 있다. 부산의 모든 바다에 다 해 보았다. 빠른 해류로 금방 희석되어서 곧 아름다운 바다색으로 변하는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율촌면에서 진입한 두언길은 돌아가는 길이 없는 관계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야 한다. 들어오면서 본 풍경은 나갈 때 보는 풍경과 같지 않다.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느끼는 정서도 다른 것이 바이크 여행의 묘미다. 율촌면에서 여수 방면으로 더 달려간다.
여수시 화양면 서촌리에서 만난 길 화서로. 이 길은 정식도로가 아닌 이면도로다. 필자의 호기심과 모험심이 합쳐져 이루어낸 시간 낭비였다. 특별하게 볼 거리는 없었지만, 비포장과 울퉁불퉁한 길은 레블500의 쇼바 성능을 확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매우 하드하지 않고 적당히 부드럽게 작동한 쇼바 성능이다. 레블500은 낮고 가벼운 바이크에 해당한다. 그래서 다루기가 편해서 이런 길에서도 비교적 유리하게 라이딩이 가능한 것으로 잠정 결정보았다. 화양면에 접어들면서 필자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화양조발대교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말았다.
"여수와 고흥을 이어 주는 아름다운 대교 조발화양대교"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좋았다.
그렇게 해안도로만 고집해서 당도한 화양조발대교, 다행히 바이크 통행이 가능한 대교였고 풍경 또한 지리고 오졌다. 금방 도착할 길을 이부러 에둘러 천천히 당도한다. 다르게 보면 시간 낭비지만 오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바이크 여행의 묘미다. 화양조발대교는 여수와 고흥을 이어 주는 섬들 사이에 만들어진 4개의 다리로 구성된 길이다. 다리에 대한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21년도에 접어들면서 필자가 봄부터 계획했던 여행을 이렇게 가을에 완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곳은 적금리 휴게소였다.
전라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가 바로 정식이다. 이 지역의 정식은 정성스럽다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한식뷔페라는 식당이 많이 생겼지만, 사실 뷔페가 아니고 반찬을 따로 퍼 먹을 수 있는 정식집에 불과하다. 하지만 적금리의 정식은 주인의 자랑과 함께 오지고 지렸다.
필자와 함께해 준 스티드600 라이더(드러머 황)님은 다시 업무 복귀를 위해서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돌아갔다. 바쁜 와중에도 회사를 제껴가며 필자와 함께해서 즐거웠다며 손을 흔들고 떠났다.
"특별할 것도 없지만 특별한 풍경 적금도"
오줌 눌 곳을 찾아다녔다.
바다는 필자에게 있어서 흔한 풍경이다. 필자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바다는 늘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부산이 아닌 다른 바다를 보면서 각 지역의 특색이 바다와 어우러져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필자는 바이크 여행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라이더가 되었다. 작은 바이크와 가방을 뒤에 싣고 달리면 이렇게 낯설고 작은 적금도라는 곳에 당도할 수 있다. 적금도는 매우 작은 섬이다. 뭐 특별할 것도 없는 그런 공간이다. 다리 아래에 위치해 있고 밥도 먹어서 배를 꺼트릴 목적으로 방문한 곳이다.
분위기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작은 행성 같은 분위기다. 조용한 바다와 작은 길. 아무도 없는 풍경. 딱 필자가 원하는 분위기의 섬이더라. 이곳에 앉아서 한동안 볕을 받다 보니 벌써 해가 지는 시간에 가까워져 간다.
섬 끝까지 달려보았다. 섬도가 끝나는 지점에 해는 길게 늘어져서 역광으로 사진찍기조차 힘들었다. 적금도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마을 주민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필자를 보게 된다. 신고로 이어지기 전에 섬을 떠난다. 이제 이곳에서 오늘의 종점으로 달려 본다.
"아름다운 항구 도시 목포로 향한다."
기우는 해를 보고 한참을 그렇게 달렸다.
적금도에서 목포는 두어 시간 달리면 도착한다고 네비에서 알려 준다. 시간은 이미 4시를 넘어서고 있는 터라 좀 바쁘게 움직인다. 레블500의 최고 170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직발 도로를 즐기는데 비교적 부족함이 없다. 중간에 보성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잠깐 보고 달려서 시간은 다소 지체되었다. 이날은 목포에서 익숙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할 요량으로 달렸다.
이곳에서 뜻밖에 라이더를 만났다. 전북에 있는 본가를 방문하고 제주도로 돌아간다고 하는 nMax라이더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필자를 알아보시고 방가워해주셨던 필자의 구독자님이셨다. 오지고 지렸다. 확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오지고 지렸다. 같이 저녁을 먹고 (식사 고맙습니다. ㅜㅜ) 입도바이를 각자 시전하시고 새벽에 제주도로 돌아가셨다고 전해졌다.
2018년 진도 여행 중 막삼250을 타고 방문했던 게스트하우스다. 좋은 시설과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우리 집 같은 푸근함으로 많은 젊은 여행객이 머무는 곳이다. 필자도 우연히 방문하여 알게 된 곳이다. 두 번째 방문이다. 사장님은 필자를 알아보시고 아무 말씀을 하지 않았다. 필자도 아무 말 없이 취침에 진입했다. 이렇게 전라도 여행 2일차가 마무리되었다. 내일은 백수해안도로로 향할 마음에 설렌다. 그래도 잠은 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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